의학적 안락사가 불법인 아르헨티나에서 최근 ‘적극적 안락사(AE)'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현지 매체 인포바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우루과이 입법부가 지난달 15일 중남미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이후 아르헨티나도 안락사 제도화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의료진이 약물을 투여해 죽음을 돕는 AE가 불법이다. AE는 환자가 겪는 극심한 고통을 완화하거나 삶을 평온하게 마감하도록 의료인이 직접 개입해 죽음을 유도하는 행위다.
다만 2012년 제정된 '존엄사법(LDDLMD)'을 통해 말기·불치·비가역적 질병 진단을 받은 환자와 가족이 고통만 연장하는 치료나 처치를 거부할 권리는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LDDLMD는 환자가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 영양·수액 공급 등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할 권리를 명시하며 의료진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 AE는 불법이지만 소극적 안락사(PE·존엄사)인 치료 거부는 합법으로 보호되는 셈이다.
매체는 2009년 비가역적 뇌 손상을 안고 태어난 카밀라 산체스 사례가 LDDLMD 제정에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산체스는 ‘비진행성 만성 뇌병증(NCE)’ 진단을 받고 3년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생명을 이어갔다. NCE는 출생 전·후나 초기 성장기 뇌 손상으로 발생해 시간이 지나도 악화되지 않는 만성 뇌 기능 장애다. 어머니 셀바 에르본은 의료진과 법적·행정 당국을 상대로 무의미한 치료 중단을 요구하며 법 제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루게릭병 환자 알폰소 올리바와 아드리아나 스타그나로의 경우도 소개했다. 이들은 AE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대표 사례다. 알폰소는 2014년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 진단을 받고 인공호흡기를 거부하며 안락사 합법화를 요청했으나 2019년 사망했다. 이로 인해 ‘알폰소 법(AO)’이 발의됐다. ALS는 운동 신경 세포가 점차 파괴돼 근육을 움직이는 기능이 상실되는 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AO 법안은 가브리엘라 에스테베스 코르도바 주 의원이 지난해 5월 발의해 현재 아르헨티나 의회에서 심의 중이다. AO는 치명적·불치·만성질환을 앓는 성인이 자발적이고 정보에 입각한 요청을 통해 의료지원하에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아드리아나도 ALS로 일상생활 대부분을 간병인의 도움에 의존하는 상태였다. 아드리아나는 평화로운 죽음을 원했지만 의료진이 말기 판정을 거부하자, 2023년 코르도바에서 사전 지시서와 진정제를 통해 LDDLMD에 근거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알폰소와 아드리아나 사례가 아르헨티나에서 '생명 유지'와 '자기 결정권' 논의를 촉발하면서 AE 관련 법안 5건 제출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다만 각 법안의 명칭과 발의 일자, 본회의 상정상태 등에 대한 정보는 아직 공개된 상태가 아니며 논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인간의 생명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극심한 고통 속에서 환자가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오랜 시간 이어져왔다. 현대적 의미의 안락사 논의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본격화됐다.
2001년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AE를 법제화하고 2002년부터 시행하며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벨기에(2002), 룩셈부르크(2009), 캐나다·스페인·뉴질랜드·우루과이 등이 AE와 조력자살(PAS)을 허용했다. 호주 일부 주에서는 자발적 사망조력(VAD)이 허용된다.
AE와 PAS, VAD는 모두 고통 경감과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시행되지만 수행 주체와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AE는 의사가 직접 치사 약물을 투여해 환자의 생명을 종료하는 반면, PAS는 의사가 약물을 처방하되 환자가 스스로 복용해 죽음을 맞이한다. VAD는 PAS와 유사하지만 환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 전체를 법적으로 보호해 일부 주에서는 의료인이 과정 전반을 돕는 제도다.
안락사는 여전히 윤리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찬성 측은 “삶의 질이 상실된 상태에서 환자는 ‘죽을 권리’를 가지며 고통 없는 죽음은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마지막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의료인이 생명을 끊는 것은 ‘살릴 의무’에 반하며 제도화될 경우 사회적 약자나 장애인에 대한 생명 경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결국 AE는 생명 존중과 자기결정권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대표적 생명윤리 문제다. 각국은 사회적 합의 속에서 제도 범위를 조정하며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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